시라쿠사의 장담
아르키메데스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설 자리를 달라. 그러면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 그리고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시라쿠사의 왕 히에론이 그 장담을 시험하자, 아르키메데스는 짐과 사람을 실은 배에 복합 도르래 장치를 걸고, 혼자 앉아 줄을 당겨 배를 끌어 보였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사건이 있었다는 시점보다 수백 년 뒤에 기록된 전승이라, 그날 항구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일화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하다. 담겨 있는 물리가 진짜이기 때문이다. 줄을 여러 가닥으로 나눠 거는 장치는 실제로 한 사람의 힘을 여러 사람 몫으로 늘린다. 노인 한 명이 배를 움직인다는 그림은 과장일지 몰라도, 거짓말은 아니다.
배를 물가로 끌어올리는 일은 원래 여러 사람이 줄지어 매달려야 하는 노동이었다. 그 줄의 끝에 앉은 한 사람 — 전승이 그리는 이 그림이 사람들의 기억에 이천 년 넘게 남은 것은, 그것이 기계라는 것의 본질을 한 장면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 장담과 그 배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 이 글의 주인공, 여섯 개의 단순기계다.
하나의 문법 — 힘과 거리를 맞바꾼다
여섯 개라고 하지만, 문법은 하나다. 기계는 힘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힘과 거리를 맞바꿀 뿐이다. 적은 힘으로 무거운 것을 움직이고 싶으면, 그 대가로 더 긴 거리를 움직여야 한다. 세상에 공짜 들어올리기는 없다 — 다만 지불 방식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지레가 이 문법의 첫 문장이다. 막대 하나와 받침점 하나. 받침점에서 먼 쪽 끝을 길게 눌러 내리면, 가까운 쪽에 얹힌 무거운 것이 조금 들린다. 내가 판 것은 거리(길게 움직이는 팔), 산 것은 힘(팔 길이의 비율만큼 불어난). 받침점 하나만 있으면 몇 배에서 수십 배까지 — 선사 시대부터 인간은 이 거래로, 무거운 것을 맨몸으로 들어 올리던 노동에서 처음 벗어났다. 자기 근력의 한계를 도구로 넘어선 첫 순간이다.
도르래는 회전하는 지레다. 바퀴에 줄을 걸면 우선 방향이 바뀐다 — 끌어올리는 노동이 끌어내리는 노동이 되고, 팔 힘 대신 체중을 쓸 수 있게 된다. 우물물을 긷고 돛을 올리고 석재를 인양하던, 위로 위로 당기던 노동이 이 바퀴 하나로 편해졌다. 그리고 도르래를 여러 개 겹친 것이 아르키메데스의 그 장치, 복합 도르래다. 짐을 받치는 줄이 n가닥이면 내 손에 필요한 힘은 1/n로 준다. 물론 청구서는 어김없이 온다. 줄은 그만큼 여러 배 길게 당겨야 한다. 힘을 나눠 가진 만큼, 거리를 몰아서 낸다.
축바퀴는 지레를 둥글게 이어 붙인 것이다. 큰 바퀴를 돌리는 가벼운 힘이, 가운데 가는 축의 무거운 당김이 된다. 증폭되는 배율은 바퀴와 축의 반지름 비. 우물가에서 두레박줄을 감아올리던 자새와 윈치가 바로 이것으로, 팔로 밧줄을 한 발 한 발 감던 노동을 손잡이 하나의 회전으로 바꿔 놓았다.
움직이지 않는 기계, 움직이는 언덕, 감아올린 언덕
문법의 나머지 절반은 언덕에서 나온다.
경사면은 여섯 중에서 가장 이상한 기계다. 움직이는 부품이 하나도 없다. 그냥 비스듬한 길일 뿐이다. 그런데도 기계다. 피라미드를 쌓던 이집트의 경사로는 수십 톤의 돌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대신 땅 위로 끌게 했다. 비탈이 완만할수록 필요한 힘은 준다 — 대신 그만큼 길게 끌어야 한다. 경사 길이와 높이의 비율, 또 그 거래다.
쐐기는 그 언덕을 손에 쥐고 움직이는 것이다. 통나무는 가만히 있고 경사면이 파고든다. 내리치는 힘이 좁은 날에 모여 옆으로 벌리는 힘이 되고, 날이 길고 얇을수록 그 증폭은 커진다. 도끼가 장작을 가르고 끌이 목재와 돌을 여는 원리가 전부 여기 있다. 결을 따라 파고들어 재료를 안에서부터 가르는 것 — 힘으로 밀어 쪼개는 게 아니라, 언덕의 기울기가 대신 벌려 주는 것이다. 신석기의 손이 이미 이 기계를 알고 있었다.
나사는 언덕을 기둥에 감아올린 것이다. 나선을 따라 한 바퀴 도는 긴 여정이, 피치 하나만큼의 짧은 전진으로 바뀐다. 회전 둘레와 피치의 비율만큼 힘이 불어나니, 여섯 기계 가운데 가장 급한 환율로 거리를 힘과 바꾸는 셈이다.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 세계의 압착기가 이 원리로 올리브와 포도를 눌렀다 — 그 전까지 지렛대에 여럿이 매달리던 일을, 한 사람의 느리고 꾸준한 회전이 대신했다. 나사는 빠르지 않다. 대신 멈추지 않고, 풀리지 않는다. 느린 회전이 쌓여 만드는 거대한 압력, 그것이 이 기계의 재능이다.
여섯 개의 알파벳
지레, 도르래, 축바퀴 — 받침점의 가족. 경사면, 쐐기, 나사 — 언덕의 가족. 두 가족, 여섯 식구, 문법은 하나. 힘이 모자라면 거리로 내라.
이후에 온 도구들은 새 문법을 발명한 게 아니라 이 여섯 글자로 문장을 지었다. 크레인은 도르래와 축바퀴를 겹쳐 올린 탑이고, 맞물려 도는 기어는 이가 하나씩 걸릴 때마다 반지름의 거래를 반복하는 축바퀴들이며, 프레스는 나사가 만드는 느리고 거대한 압력이다. 부엌 가위 속에도, 병뚜껑의 나선에도, 항구의 기중기에도 같은 여섯 글자가 들어 있다. 낯선 기계 앞에 섰을 때 물어야 할 질문도 결국 하나로 줄어든다. 이 장치는 어디서 거리를 내주고, 어디서 힘을 받아 오는가.
그러니 아르키메데스의 장담을 이렇게 다시 읽어도 좋겠다. 설 자리 — 받침점 하나만 확보되면, 나머지는 거리의 문제일 뿐이라고. 지구를 들 만큼 긴 지레와 그것을 밀고 갈 시간은 아무도 가지지 못했지만, 방향은 정확했다. 인간은 힘이 세지는 쪽이 아니라, 힘을 바꿔 내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여섯 개의 단순기계는 그 교환의 첫 알파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