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건축과 보통의 집
건축의 역사는 대체로 돌의 이야기로 쓰인다. 채석장에서 떠낸 돌을 나르고, 다듬고, 들어 올려 쌓는 이야기. 피라미드와 신전과 대성당이 그 계보의 주인공이고, 그 곁에는 언제나 돌을 캐고 한 덩이씩 다듬던 노동이 있었다. 덩이마다 크기가 다르고 모양이 달랐으므로, 그 노동의 핵심은 맞추는 일이었다. 이 자리에 맞는 돌을 고르고, 이 돌에 맞게 이웃 돌을 깎는 일. 위대한 건축은 그 솜씨의 기념비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집은 다른 계보에서 왔다. 그 계보의 주인공은 기념비적이지 않다. 손바닥에 얹히는 흙덩이 하나와, 손가락만 한 쇠토막 하나다. 벽돌과 못 — 둘의 공통점은 단 하나, 낱개는 하찮지만 서로 완전히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같음'이 집을 짓게 된 이야기다.
캐 오는 재료, 만들어 내는 재료
벽돌은 채석장이 없는 땅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4천년기 메소포타미아의 충적 평야에는 캐 올 돌이 없었다. 있는 것은 강이 실어 온 진흙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진흙을 틀에 눌러 담아 볕에 말렸고, 나중에는 가마에 구웠다. 흙과 틀과 불 — 이 셋이 만나자 건축 재료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 돌은 캐 오는 재료다. 어떤 덩이가 나올지는 산이 정한다. 벽돌은 만들어 내는 재료다. 크기는 틀이 정하고, 틀은 사람이 정한다.
같은 틀에서 나온 벽돌은 서로 같다. 그래서 벽돌 벽을 쌓는 데에는 돌 벽을 쌓을 때의 그 판단 — 이 자리에 어느 돌이 맞는가 — 이 필요 없다. 한 장을 놓는 동작을 익히면 만 장을 놓을 수 있다. 벽 쌓기가 솜씨에서, 누구나 되풀이할 수 있는 공정으로 바뀐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가 이 단위로 올라갔고, 오늘의 벽돌집도 같은 단위로 올라간다. 벽돌이 한 손에 잡히는 크기라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이 규격은 처음부터 사람의 손이라는 가장 오래된 도구에 맞춘 규격이었다.
짜 맞추는 집과 그 손
목재의 사정은 오래도록 달랐다. 나무로 집의 뼈대를 세우려면 부재와 부재를 이어야 하는데, 이음은 숙련의 영토였다. 장부를 파고 쐐기를 깎아 맞추는 결구는 두 부재를 서로에게 정확히 맞추는 일이었고, 그 정확함은 목수의 손에서만 나왔다. 돌 쌓기가 그랬듯 짜맞춤 역시 결국 '맞추는' 노동이었던 셈이다.
그 곁에는 면을 내는 노동이 있었다. 이음이 맞으려면 먼저 면이 발라야 한다. 자귀로 깎고 긁개로 문지르던 이 일을 맡은 도구가 대패다. 폼페이의 목공 연장 가운데 이미 대패가 있고, 날을 몸통에 물려 깎이는 깊이를 고정한 이 발상은 이천 년 가까이 형태를 거의 바꾸지 않았다. 깎임의 두께가 팔심이 아니라 도구의 설정이 된 것 — 규격이라는 발상이 재료가 아니라 도구 쪽에 스며든 이른 사례다.
못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있었지만 귀했다. 대장간에서 하나씩 벼려 만드는 못은 아껴 쓰는 물건이었다. 그러니 이음의 기본은 여전히 파고 깎아 맞추는 쪽이었고, 집의 뼈대는 여전히 목수의 손을 기다려야 했다.
못이 헐값이 된 날
19세기에 못 제조 기계가 이 셈법을 무너뜨렸다. 대장장이가 하나씩 벼리던 못을 기계가 쏟아내자 값이 무너졌고, 못은 아끼는 물건에서 소모품이 됐다. 한편 목재 쪽에서도 같은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통나무를 판재로 켜는 일은 본래 두 사람이 톱대를 마주 잡고 하루를 보내는 노동이었다. 위에서 켜는 자와, 아래에서 톱밥을 뒤집어쓰는 자. 그 팔의 왕복을 물이 대신한 것이 수력 제재소다 — 물레바퀴의 회전을 톱의 왕복으로 바꾼 가장 오래된 기록은 3세기 히에라폴리스의 석관 부조에 새겨진 크랭크와 커넥팅 로드이고, 목재 제재소가 그 뒤를 따랐다. 이 계보를 이어받은 제재소는 같은 치수의 목재를 반복해서 켜 냈다. 켜는 노동이 기계의 일이 되자, 목재 역시 벽돌처럼 '같은 단위'로 공급되는 재료가 된 것이다.
규격 목재와 헐값의 못. 이 둘이 만난 곳이 1830년대의 시카고다. 벌룬 프레이밍이라 불리게 된 공법은 가느다란 규격 목재를 못으로 박아 세우는 골조였다. 장부도 쐐기도 없다. 이음마다 요구되던 목수의 판단이 박기 한 번으로 줄었다. 숙련 목수 없이도 집이 섰고, 결구를 배운 적 없는 손으로도 골조가 올라갔다. 서부로 뻗어 가던 도시들이 이 목재 골조의 속도로 속성 건설됐다. 집을 원하는 사람의 수가 목수의 수를 기다려 주지 않던 시대에, 규격이 숙련의 빈자리를 채운 것이다.
짜 맞추는 집이 박아 세우는 집이 되면서 잃은 것도 있다. 결구의 솜씨는 일부 장인의 일로 물러났다. 그러나 얻은 것의 크기도 부정하기 어렵다. 집이라는 물건이 소수의 솜씨에서 다수의 공정으로 내려온 것이다.
손안의 규격
벽돌과 못 사이에는 사천 년이 넘는 거리가 있지만, 둘은 같은 문장으로 요약된다. 낱개를 서로 같게 만들면 맞추는 노동이 사라진다. 벽돌은 재료를 같게 만들어 돌 다듬던 손을 대신했고, 못은 이음을 같게 만들어 장부 깎던 손을 대신했다. 같은 시대 제조업의 작업대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 거푸집이 같은 모양을 찍어내고 게이지가 같은 치수를 지키던, '규격의 힘'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들이다.
위대한 건축은 여전히 돌의 이야기로 남아 있고,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집 — 벽돌 벽과 못으로 선 목조 골조 — 은 규격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존 헨리 같은 영웅이 없다. 틀에 진흙을 눌러 담던 이름 없는 손과, 골조 위에서 못을 박던 이름 없는 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익명성이 이 계보의 성취다. 누구의 손이어도 같은 벽이 서고 같은 골조가 오른다는 것 — 그것이 규격이 노동에게 건넨 약속이었다. 이름이 남는 건축이 솜씨의 기념비라면, 이름 없는 수많은 집은 같음의 기념비다. 그리고 사람들 대부분은, 언제나 그 두 번째 집에서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