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하는 사람들
'computer'는 본래 기계의 이름이 아니었다. 직업의 이름이었다. 데이비드 앨런 그리어가 『When Computers Were Human』에서 복원했듯, 천문대와 항해 부처와 병기창에는 문자 그대로 '컴퓨터', 즉 계산수라는 직함을 단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의 일은 항해력과 탄도표 같은 수표를 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한 권의 표를 위해 몇 달씩 곱하고 더했고, 같은 계산을 두 사람이 따로 수행해 서로의 결과를 검산했다. 도구는 종이와 연필, 그리고 지치지 않는 집중력이 전부였다. 표의 숫자 하나가 틀리면 그 표를 믿은 배가 길을 잃을 수 있었으므로, 이 직업의 핵심 덕목은 천재성이 아니라 꼼꼼함이었다. 정해진 자리에 앉아, 정해진 양의 숫자를 처리하고, 남의 계산을 검산하고 남에게 검산받는 것. 계산은 지능의 과시이기 이전에 인내의 노동이었고, 그래서 다른 모든 노동이 그랬듯 언젠가 도구의 표적이 될 운명이었다. 계산이란 오랫동안 이런 것이었다. 사람의 머릿속에서 사람의 손끝으로 흘러나오는 노동.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말을 우리는 이미 안다. 지금 'computer'라고 말하면 아무도 사람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한 직업의 이름이 통째로 기계에게 넘어간 드문 사건이 놓여 있고, 그보다 긴 계보 — 정신노동이 조금씩 도구로 옮겨 간 과정이 놓여 있다. 이 글은 그 인수인계를 따라간다.
구슬이 기억을 대신하다
첫 이양은 기억에서 시작됐다. 메소포타미아의 계산판에서 중국과 일본의 주판까지, 시대와 형태는 달라도 원리는 하나였다. 주판은 자리값이라는 추상 — 이 구슬은 일, 저 구슬은 십, 그 옆은 백 — 을 구슬의 물리적 위치로 외부화한 장치다. 암산하는 사람은 중간 결과를 전부 머리에 붙들고 있어야 하지만, 주판 앞에 앉은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다. 계산의 현재 상태는 언제나 틀 위에 놓여 있고, 손은 다음 조작만 수행하면 된다. 기억 대신 손이 계산을 드는 것이다. 계산판 위의 자갈을 뜻하던 라틴어 calculus가 오늘날 '계산'의 어원으로 남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계산이라는 행위가 그 출발점에서부터 돌멩이라는 물건에 기대고 있었다는 흔적이, 말 속에 화석처럼 박혀 있는 셈이다. 정신노동을 도구에 넘긴 첫 장치가 남긴 것은 계산 속도만이 아니라 단어 하나였다.
로그를 나무에 새기다
1620년대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계산자는 다른 종류의 이양을 보여준다. 이번에 외부화된 것은 기억이 아니라 수학적 발견 그 자체였다. 네이피어의 로그 — 곱셈을 덧셈으로 바꾸는 성질 — 를 눈금의 간격으로 나무 막대에 새기자, 여러 자리 곱셈과 나눗셈을 종이 위에서 한 단계씩 밟아 가던 필산 노동이 두 자의 눈금을 맞추는 한 번의 동작으로 줄었다. 로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로그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나무 막대는 이후 3세기 동안 엔지니어의 허리춤에 걸려 다리와 비행기를 계산했고, 아폴로 시대의 기술자들까지 이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 지식이 도구 속에 물화되면 그 지식은 더 이상 아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눈금을 맞추는 손은, 로그를 발견한 수학자의 정신노동을 매번 공짜로 빌려 쓰고 있었던 셈이다. 계산자는 그 원리를 300년 동안 증명한 물건이었다.
받아올림이 톱니 속으로
주판과 계산자는 여전히 사람이 계산의 매 단계를 직접 수행하는 도구였다. 1642년 프랑스 루앙에서 그 선이 처음 넘어갔다. 열아홉 살의 파스칼은 세무관인 아버지가 밤을 새워 세액을 더하고 다시 검산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덧셈에서 가장 기계적인 부분 — 받아올림 — 을 말 그대로 기계에게 시키기로 한다. 파스칼린에서 9를 넘는 자리 넘김은 톱니바퀴의 회전으로 저절로 일어난다. 산술의 한 단계가 처음으로 사람 바깥, 기계 속에서 수행된 것이다. 처리량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기계였지만 증명으로 보면 거대했다. 몸의 노동만이 아니라 정신의 노동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이 가산기는 처음으로 실물로 보여주었다. 받아올림이 첫 후보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규칙을 남김없이 적을 수 있는 일이었고, 규칙을 남김없이 적을 수 있는 일은 기계에게 넘길 수 있다 — 이후의 모든 자동화가 거듭 확인하게 될 원리다. 아버지의 밤샘을 덜어 주려던 아들의 기계가, 300년 뒤 계산수 전체의 책상을 치우게 될 계보의 첫 칸이었다.
8년이 걸린 셈
규모의 문제는 따로 남아 있었다. 1880년 미국 인구조사는 집계에 약 8년이 걸렸다. 수백 명의 집계원이 조사표를 손으로 세고 옮겨 적는 동안 다음 조사가 다가오고 있었으니, 이대로면 집계가 끝나기 전에 새 조사가 시작될 판이었다. 홀러리스의 천공카드 집계기는 이 병목을 뒤집었다. 사람의 답을 카드의 구멍으로 바꾸고, 전기가 그 구멍을 세게 한 것이다. 1890년 조사의 집계는 대폭 단축됐고, 더 중요하게는 '데이터 처리'라는 산업이 여기서 열렸다. 홀러리스의 회사는 합병을 거쳐 IBM이 됐다. 물론 사람의 노동이 통째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카드에 구멍을 뚫는 일, 기계에 카드를 먹이는 일이 새로 생겼다. 그러나 '센다'는 행위 자체는 이제 전기의 것이었다. 계산수 한 사람의 책상 위에서 일어나던 일이, 이제 카드 뭉치와 기계가 늘어선 방의 규모로 커지고 있었다.
이름을 넘겨주다
1946년 이후 전자식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저울은 완전히 기울었다. 계산수 한 명이 며칠 걸리던 계산 — ENIAC이 처음 맡은 일도 계산수들이 몇 달씩 손으로 만들던 바로 그 탄도표였다 — 이 초 단위로 끝났고, 계산의 규모는 사람 수의 제약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언어가 그 변화를 봉인했다. 'computer'라는 말이 사람에게서 기계로 옮겨 간 것이다. 직업이 사라지는 일은 역사에 흔하지만, 직업의 이름이 통째로 그것을 대체한 기계의 이름이 되어 버린 사례는 드물다. 망치는 목수의 이름을 가져가지 않았고, 재봉틀은 재봉사의 이름을 가져가지 않았다. 그런데 계산 기계는 계산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갔다. 이 기계가 대신한 것이 직업의 곁가지가 아니라 몸통 그 자체였다는 뜻이다.
이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2년 HP-35가 로그와 삼각함수를 셔츠 주머니 속에 넣자, 300년을 이어온 계산자는 전자계산기 앞에서 몇 년 만에 자취를 감췄다. 계산자 명가 K&E는 1976년 생산을 접었다. 도구가 도구를 밀어내는 속도는, 도구가 사람을 밀어내는 속도보다도 빨랐다. 그리고 1979년, 경영대학원생 브리클린이 칠판 위의 표가 지워지고 다시 쓰이는 것을 지켜보다 만든 비지캘크 — 첫 스프레드시트 — 가 나왔다. 장부의 숫자 하나가 바뀔 때마다 관련 칸 전체를 지우개와 계산기로 다시 채우던 밤샘 재계산이, 셀 하나를 고치면 그 자리에서 끝나는 일이 됐다. 이 프로그램은 컴퓨터를 사무실 책상 위로 끌어온 첫 '킬러 앱'으로 불린다. 계산수의 이름을 가져간 기계가, 이번에는 책상 하나 크기로 줄어 계산수의 후예들 곁에 놓인 것이다.
여기에 이 계보의 마지막 반전이 있다. 계산수라는 직업은 이름까지 잃고 사라졌지만, 회계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일이 바뀌었을 뿐이다. 밤새 숫자를 다시 맞추던 사람은 이제 '만약 이 값이라면'을 몇 초 만에 시험하는 사람이 됐다. 재계산의 노동이 사라진 자리에 시뮬레이션이라는 새 일이 들어선 것이다. 도구가 노동을 가져갈 때 어떤 직업은 이름을 내주고, 어떤 직업은 일의 내용을 바꾼다. 그 갈림이 어디서 생기는가 — 이것이 이 아카이브가 계속 따라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