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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 CONSTRUCTION

많은 사람 대신 깊은 장치 — 크레인의 2500년

피라미드는 사람을 더 붙여 돌을 올렸고, 그리스 신전은 장치를 더 깊게 만들어 올렸다 — 크레인에서 항타기·나사·믹서까지, 건설 현장에서 사람 수가 줄어든 2500년의 계보.

경사로 위의 행렬

건설은 처음부터 높이와의 싸움이었다. 돌은 무겁고, 벽은 위로 자라야 한다. 이 싸움의 가장 오래된 해법이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남아 있다. 흙으로 경사로를 쌓고, 그 비탈 위로 석재를 끌어올리는 것 — 여기에는 장치라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경사로는 기계가 아니라 지형이고, 지형은 힘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돌이 더 크면 답은 하나였다. 사람을 더 붙인다. 게다가 경사로는 그 자체가 공사였다. 벽이 높아질수록 비탈도 함께 자라야 했고, 건물이 완성되면 그 흙을 도로 걷어 내야 했다. 돌을 올리는 노동 옆에, 돌을 올리기 위한 길을 쌓고 허무는 노동이 나란히 있었던 셈이다. 무게와의 싸움은 곧 사람 수의 싸움이었고, 공사의 단위는 장비가 아니라 인원이었다. 그리스에서도 초기 신전 공사는 같은 문법을 썼다. 그런데 기원전 6세기 무렵, 그리스의 건축 현장에서 이 문법이 바뀐다. 고전 고고학자 쿨턴(J. J. Coulton)이 추적한 전환이다. 석재에 남은 밧줄 홈과 집게 자국 같은 흔적이 증언하는 것은, 돌이 더 이상 비탈을 끌려 올라가지 않고 허공을 수직으로 들려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기중기의 도착이다.

도르래, 윈치, 그리고 바퀴 속을 걷는 사람

크레인의 핵심은 부품 하나하나가 아니라 결합이다. 도르래가 힘의 방향을 바꾸고, 여러 장의 도르래가 힘을 나누고, 윈치가 그 힘을 감아 들이고, 마지막으로 답차(踏車) — 사람이 안에 들어가 걷는 큰 바퀴 — 가 걸음을 회전으로, 회전을 인양으로 바꾼다. 결과는 산수의 역전이다. 경사로 위에서 수백 명이 하던 일을, 소수의 인원이 수 톤의 석재를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일로 바꿔 버린 것이다.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사람의 '수'가 아니라, 장치를 통과한 사람의 힘이다. 그리고 힘의 자리를 장치가 차지하자, 사람에게 남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이 된다. 돌에 밧줄을 걸고, 집게를 물리고, 들린 돌을 제자리에 앉히는 일 — 근수로 세던 노동이 솜씨로 세는 노동으로 바뀌는 것이다. 문제가 커질 때 사람을 더 붙이는 대신 장치를 더 깊게 만든다 — 도르래를 한 장 더 걸고, 바퀴를 더 크게 짓는다. 건설의 문법이 바뀐 순간이고, 이 문법은 한번 쓰인 뒤 지워지지 않았다. 답차 크레인은 로마를 거쳐 중세 대성당의 공사장까지 이어졌다. 첨탑 아래에서 바퀴 속을 걷던 사람들이 돌을 올렸고, 일을 마친 바퀴 몇은 지금도 성당 지붕 밑에 남아 있다. 피라미드와 대성당은 둘 다 높이의 기념비지만, 하나는 인원의 기록이고 하나는 장치의 기록이다.

달구 소리가 박자를 잃을 때

들어 올리는 장치는 곧 떨어뜨리는 장치가 됐다. 다리와 항구는 말뚝 위에 서고, 말뚝은 때려 박아야 한다. 기계 이전의 달구질은 집단의 노동이었다. 여럿이 줄을 나눠 잡고 소리를 맞춰 떨공이를 끌어올렸다가 일제히 놓는다. 하루 종일, 같은 동작을, 같은 노래에 맞춰. 달구 소리는 흥이 아니라 공정이었다 — 호흡이 어긋나면 타격이 어긋났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항타기는 이 노동에 크레인의 계보를 접붙인 물건이다. 윈치와 래칫이 떨공이의 인양을 맡자 낙하 높이가 일정해지고 타격이 고르게 됐다. 여기서도 교체된 것은 사람의 힘이기 이전에 사람의 '수'다. 줄을 잡던 여러 손이 크랭크를 돌리는 몇 손으로 줄었고, 증기 해머가 도착한 뒤에는 타격의 박자 자체가 사람의 호흡을 떠났다. 노래로 맞추던 간격을 기계가 제 박자로 대체한 것이다.

물을 올리는 나선, 반죽을 돌리는 드럼

땅을 다루는 일에는 돌보다 먼저 물이 있다. 물이 고인 땅에는 기초를 놓을 수 없고, 물이 스며드는 구덩이는 파는 속도만큼 다시 차오른다. 기계 이전의 배수는 두레박을 손에서 손으로 넘기는 릴레이 — 순전히 사람 수로 밀어붙이는 노동이었고, 손이 멈추면 물이 이겼다.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 이집트에서 나온 아르키메데스 나사는 이 릴레이를 한 사람의 일로 접었다. 기울인 통 속의 나선을 돌리면 물이 연속으로 올라온다. 로마의 광산에서는 여러 대를 계단식으로 이어 갱도의 물을 단계별로 퍼 올렸고, 간척지에서는 물에 잠긴 땅을 사람이 설 수 있는 땅으로 바꿨다. 퍼내는 노동이 돌리는 노동이 된 것이다. 같은 이야기의 현대판이 반죽에서 반복된다. 철근콘크리트의 세기가 열렸을 때, 콘크리트는 아직 팔의 산물이었다. 판 위에 시멘트와 모래와 자갈을 붓고 삽으로 뒤집고 또 뒤집는 허리의 일. 1900년대의 콘크리트 믹서는 그 뒤집기를 회전 드럼에 넘겼다. 드럼이 배합을 고르게 하고 사람은 붓는 일로 물러난다. 레미콘 트럭에 이르면 반죽은 아예 공장에서 현장으로 가는 길 위에서 완성된다 — 비비던 손이 현장에서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비비는 일 자체가 현장을 떠난 것이다.

2500년의 관통선

기원전 6세기의 답차에서 오늘의 레미콘까지, 이 계보를 하나로 꿰는 선은 분명하다. 건설 현장에서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대신 장치가 깊어졌다는 것. 경사로의 수백 명이 크레인의 몇 명이 되고, 줄을 당기던 여러 손이 윈치의 몇 손이 되고, 두레박 릴레이가 나사 하나가 되고, 삽질하던 팔이 드럼의 회전이 됐다. 같은 회의 다른 갈래인 오르막 이야기와 뿌리가 같다 — 무거운 것을 높은 곳으로 옮기려는 싸움에서, 인류는 언제나 같은 갈림길에 섰다. 사람을 더 붙일 것인가, 장치를 더 깊게 만들 것인가.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현장이 두 번째 길을 골랐고, 그 뒤로 2500년 동안 건설은 그 선택을 반복해서 다시 골라 왔다. 물론 이 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크레인의 계보는 증기삽과 굴착기로, 답차의 후예는 더 깊은 기계들로 이어진다. 그러나 갈림길 자체는 기원전 6세기에 이미 지나왔다. 오늘 타워크레인 한 대가 서 있는 자리는, 한때 경사로와 행렬이 서 있던 자리다.

REFERENCES이 이야기의 근거 — 참조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