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기록한 시합
미국 민요 가운데 가장 오래, 가장 널리 불린 노동요를 하나만 꼽으라면 「존 헨리」가 빠지지 않는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철도 터널 공사장의 해머잡이 존 헨리 앞에 증기 드릴이 도착한다. 그는 기계와 굴진 시합을 벌여 더 깊이 뚫고 이기지만, 시합이 끝난 자리에서 심장이 터져 죽는다. 판본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고 가사는 부르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기계를 이기고 죽는다는 뼈대만은 어느 판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전승은 흔히 이 이야기를 1870년대 미국 철도 터널 공사에 붙여 놓는다. 그러나 존 헨리가 실존 인물이었는지, 시합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지금도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거리다. 20세기 초부터 민속학자들이 공사 기록과 늙은 인부들의 증언을 뒤지며 후보 터널과 후보 인물을 추적했지만, 증언은 서로 어긋났고 기록은 듬성듬성했다. 어느 연구도 노래를 확정된 역사로 만들지는 못했다.
기억할 것은 「존 헨리」가 무대의 노래이기 전에 일터의 노래였다는 점이다. 해머 송이라 불리는 이 계열의 노동요는 망치를 내리치는 박자에 맞춰 불렸고, 절과 절 사이의 숨이 곧 타격의 간격이었다. 해머잡이들은 자기 일의 리듬에 실어, 자기 일을 끝장낼 기계의 이야기를 불렀던 셈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사실 검증의 대상으로만 다루면 과녁을 비껴간다. 시합이 있었든 없었든, 노래가 기록하고 있는 사건 하나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착암기의 도착이고, 그것은 문서고가 아니라 후렴 속에 보존됐다. 터널 공사장에 기계 드릴이 들어왔고, 정과 망치를 잡던 사람들이 그 기계를 자기 팔의 경쟁자로 받아들였다는 것 — 노래는 그 순간의 감정을 냉동 보존한 문화적 문헌이다.
정을 잡은 손, 망치를 쥔 손
존 헨리가 하던 일 자체는 정확히 알려져 있다. 기계 이전의 암반 천공은 이인일조의 노동이었다. 한 사람이 정을 잡고 조금씩 돌리면, 다른 한 사람이 망치를 내리친다. 정을 잡은 사람은 타격 사이마다 정을 돌려 날이 바위를 고르게 물도록 했고, 망치가 빗나가면 다치는 것은 그 손이었다. 근력만큼이나 상대에 대한 신뢰를 요구하는 노동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팔을 소모해 얻는 것이 발파 구멍 몇 개였다. 구멍에 화약을 채워 터뜨리고, 깨진 돌을 실어 내고, 다시 구멍을 뚫는다. 단단한 암반 앞에서 터널은 이 순환의 속도로만 전진했다. 암반이 단단할수록 하루의 전진은 짧아졌고, 긴 터널 하나는 곧 한 세대의 공사를 뜻했다.
1860년대에 이 순환의 앞 단을 기계가 맡기 시작했다. 압축공기로 작동하는 착암기는 미국의 후삭 터널과 알프스의 몽스니 터널에서 굴진 속도를 수 배로 끌어올렸다. 둘 다 당대 최대급의 난공사로 꼽히던 현장이었고, 기계 드릴이 실전에서 제 값을 증명한 첫 무대이기도 했다. 뒷 단도 바뀌었다. 1867년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스며들여 안정화한 다이너마이트를 내놓았다. 흑색화약보다 수 배 강한 발파를 사람이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정과 망치로 바위를 쪼아 내던 노동은 사실상 끝났다. 천공과 발파의 순환은 산업의 리듬이 됐고, 그 리듬 속에 해머잡이의 자리는 없었다.
시합의 승패는 그러니까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노래 속 존 헨리는 이긴다. 그러나 노래 밖의 해머잡이들은 모두 졌다 — 정확히 말하면, 시합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자리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이기고 죽는 영웅의 이야기를 만들어 부른 것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상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터널 밖에서도 같은 교체가 진행되고 있었다. 1835년 오티스의 증기삽에서 시작한 굴착기는 기계 한 대가 인부 수십 명 몫의 굴착을 해내며 철도·운하 시대의 토공을 기계화했다. 노반을 내기 위해 언덕을 깎고 골짜기를 메우는 일은 그때까지 순전히 사람 수의 문제였는데, 기계가 그 산수를 바꿔 버린 것이다. 곡괭이와 삽의 노동이 유압 팔 하나로 접히는 동안, 존 헨리 같은 이야기는 이름만 바꿔 여러 공사장에서 반복됐다. 기계가 도착하고, 몸으로 일하던 사람이 자기 값을 증명하려 하고, 결국 공정 자체가 사람의 속도를 기준에서 지워 버리는 순서다. 노래는 터널에서 태어났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흙 위에서도 그대로 작동했다.
발파의 순환에서 회전의 연속으로
착암기와 다이너마이트가 만든 천공-발파-버력 반출의 순환도 영원하지 않았다. 발파 연기가 빠지기를 기다리며 멈추는 시간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가 터널 굴진기다. 천공-발파의 현장에서 굴진은 전진과 대기가 번갈아 드는 시간표였다. 발파 한 번마다 인부들은 물러났고, 연기가 빠질 때까지 터널은 멈춰 있었다. 1882년 보몬트의 기계가 도버 해협 밑을 시험 굴진했고, 한 세기 뒤 TBM은 커터헤드가 깎고 컨베이어가 버력을 실어 내는 연속 굴진으로 도버 해협 아래 50km의 채널 터널을 실제로 관통했다. 존 헨리를 이긴 드릴의 후예가, 이번에는 드릴-발파의 리듬 자체를 대체한 것이다. 기계는 사람만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앞 세대의 기계도 대체한다. 존 헨리의 상대였던 드릴 역시, 시간이 지나면 대체되는 쪽에 선다.
다시 쓰이는 이야기
「존 헨리」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멜로디가 좋아서만은 아니다. 이 노래는 특정 직종의 소멸을 넘어, 자기 몸의 쓸모가 기계 앞에서 값을 잃는 순간이라는 보편적인 경험을 담고 있다. 그래서 해머잡이가 사라진 뒤에도 노래는 남았고, 새 기계가 도착할 때마다 다른 작업복을 입고 다시 불렸다. 공장의 방직공이, 부두의 하역부가, 사무실의 타자수가 저마다의 존 헨리를 가졌다. 오늘 화면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AI를 두고 나누는 이야기에서도 같은 화음이 들린다. 기계와 겨루는 이야기는 그 뒤로도 계속 다시 쓰인다 — 주인공의 연장만 바뀐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