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 · MMX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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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 POWER

주머니 속의 동력 — 전지

동력의 역사는 커지는 방향만 있지 않았다. 볼타의 기둥에서 손안의 무선 공구까지 — 전선도 발전소도 없이 일하는 힘이 걸어온, 작아지고 흩어지는 두 세기의 샛길.

커지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동력의 역사는 흔히 한 방향으로 읽힌다. 맷돌을 돌리던 손이 물레방아에 일을 넘기고, 물레방아가 증기기관에, 증기기관이 발전소의 터빈에 자리를 내주는 — 더 크게, 더 세게, 더 멀리의 역사다. 그 길의 끝에서 터빈 한 대가 도시 하나를 먹이게 되지만, 힘은 커질수록 멀어지기도 했다 — 힘이 만들어지는 곳과 쓰이는 곳 사이의 거리도 함께 자랐다. 이 서가의 동력 이야기들도 대개 그 길을 따라 걸어왔다. 그러나 같은 두 세기 동안 정반대로 걸어간 힘이 하나 있다. 커지는 대신 작아지고, 한곳에 모이는 대신 흩어지고, 기관실과 송전탑 대신 주머니로 들어간 힘. 그 샛길은 1800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가 런던 왕립학회로 보낸 편지 한 통에서 갈라져 나온다.

흐름이 된 전기

볼타 이전에도 전기는 있었다. 다만 그것은 일이 아니라 구경거리였다. 정전기 기계의 크랭크를 한참 돌려야 라이덴병에 전기가 고였고, 모은 전부가 한순간의 불꽃으로 사라졌다. 전기는 쓸 때마다 손으로 만들어야 했고, 만들어도 눈 깜짝할 사이만 살았다.

1800년 볼타가 왕립학회에 알린 장치는 달랐다. 아연판과 구리판을 소금물 적신 천과 번갈아 쌓아 올린 기둥 — 이 전지는 불꽃 대신 흐름을 내놓았다. 돌릴 크랭크도, 땔 불도, 매어 둘 강물도 없이, 금속을 쌓아 둔 것 자체가 힘을 냈다. 역사상 최초의 연속 전류였다.

그리고 이 장치의 진짜 낯섦은 흐름 너머에 있었다. 물레방아는 강가를 떠나지 못하고 증기기관은 보일러 곁을 떠나지 못하는데, 이 기둥은 통째로 들고 다닐 수 있었다. 동력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힘이 저장되고 휴대되는 물건이 된 것이다.

소식은 빠르게 번져, 유럽의 실험실마다 저마다의 기둥이 쌓였다. 화학자들은 이 흐름으로 물을 가르고 새 원소를 갈라냈다. 그러나 동력의 역사에 남은 것은 실험 결과보다, 이 장치가 슬쩍 밀어 넣은 한 문장이다. 힘은 꼭 만든 자리에서 쓸 필요가 없다 — 만들어 두었다가, 들고 가서, 필요한 곳에서 꺼내 쓸 수도 있다. 전지는 그 문장을 처음으로 물건의 형태로 증명했다.

큰길과 샛길

19세기가 넓힌 큰길은 전지의 길이 아니었다. 아연을 녹여 얻는 전지의 전기는 석탄을 태워 얻는 전기보다 턱없이 비쌌다. 발전기가 회전을 값싼 전류로 바꾸자 세기는 발전소와 송전선의 것이 됐고, 공장 천장의 축과 벨트를 걷어낸 전동기조차 전선 끝에 매달린 심장이었다. 전기의 시대는 곧 전선의 시대처럼 보였고, 전지는 실험대와 전신국 선반에 남을 지나간 세대의 장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선은 어디에나 닿지 않는다. 전지는 그 닿지 않는 자리마다 스며들었다. 대륙을 가로지르고 바다 밑을 지나던 전신의 신호는 전신국 선반에 늘어선 전지에서 나왔고, 문가의 초인종과 야경꾼의 손전등이 그 뒤를 따랐다. 액체를 풀처럼 굳혀 거꾸로 들어도 새지 않는 건전지가 나오자, 전기는 마침내 외투 주머니에 들어갔다. 탄광의 모자 전등이 갱도에 불꽃 없는 빛을 가져왔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시골 농가에는 라디오가 전봇대보다 먼저 도착했다. 큰길이 발전소를 키우는 동안, 샛길은 전선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세상을 조용히 채워 갔다.

그리고 20세기가 저물 무렵, 두 길은 다시 만난다. 기계마다 제 심장을 달아 주었던 전동기가 이번에는 전선마저 끊고 전지 위에 올라앉은 것이다. 코드 없는 드릴과 톱이 지붕 위와 사다리 끝에서, 콘센트가 어디 있는지 묻지 않고 일하기 시작했다. 같은 무렵 같은 전지가 손안의 기기들 — 시계와 라디오와 전화기 — 를 차례로 전선에서 풀어 주었다. 한 손에 잡히는 물건 안에 발전소도 기관실도 아닌, 제 몫의 동력이 통째로 들어 있었다.

발틀의 후계자

이 결말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전기가 오기 훨씬 전, 인력 시대에도 개인의 동력은 있었다. 장인의 발틀이다. 발이 구동을 맡자 두 손이 일에 돌아왔고, 선반과 물레와 재봉틀은 한 사람이 온전히 부리는 기계가 됐다. 기계 하나에 심장 하나 — 다만 그 심장은 여전히 사람의 다리였고, 다리는 끼니와 피로에 매여 있었다. 발틀이 준 자유는 그래서 반쪽이었다. 두 손은 풀려났지만, 힘 자체는 여전히 몸에서 길어 올려야 했다.

전지 위의 전동기는 그 발틀의 먼 후계자다. 같은 원리 — 내 일은 내 곁의 힘으로 — 에, 처음으로 근육도 전선도 아닌 힘이 실렸다. 수차와 터빈의 역사가 힘을 키워 소수의 큰 시설에 모았다면, 이 샛길은 힘을 줄여 모든 사람의 손에 나눠 주었다. 동력의 민주화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발전소를 소유하지 않아도, 기관실을 두지 않아도, 누구나 제 몫의 힘을 갖고 다니는 시대. 높은 지붕 위의 목수, 길 한복판의 정비공, 전선이 끊긴 마을의 구조대 — 콘센트를 찾을 수 없는 모든 자리가 이 작은 힘의 몫이 됐다.

그리고 이것은 이 회차의 다른 이야기들과 한 뿌리에서 자란다. 잉크병을 책상에서 떼어내 주머니에 넣은 만년필, 인쇄소의 능력을 개인의 방으로 가져온 등사기 — 큰 시설에 묶여 있던 능력이 개인의 손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다. 전지는 그중 가장 근본적인 판본이다. 주머니에 들어온 것이 글씨도 인쇄도 아닌, 일 그 자체를 밀고 당기는 힘이기 때문이다. 펜과 등사기가 개인에게 준 것이 표현의 수단이었다면, 전지가 준 것은 일할 수 있는 능력 그 자체였다. 물레방아에서 터빈까지가 힘을 키운 역사라면, 볼타의 기둥에서 손안의 공구까지는 힘을 나눈 역사다. 동력의 역사는 그 두 길을 함께 걸어 오늘에 이르렀고, 그 샛길의 끝은 지금도 우리 주머니 속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다.

REFERENCES이 이야기의 근거 — 참조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