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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8 · POWER

공장의 심장 이식 — 라인샤프트에서 전동기로

증기기관 한 대가 천장의 축과 가죽 벨트로 공장 전체를 돌리던 시대에서, 기계마다 제 전동기를 갖고 공장이 일의 흐름대로 다시 그려지기까지 — 동력 분배의 심장이 갈린 삼십 년의 이야기.

한 대의 심장

19세기의 공장을 처음 들어선 사람의 눈을 붙잡은 것은 기계가 아니라 천장이었다. 건물을 끝에서 끝까지 가로지르는 긴 회전축이 쉬지 않고 돌고, 거기서 수십 가닥의 가죽 벨트가 내려와 바닥의 기계들을 하나씩 붙들고 있었다. 방적기도 선반도 톱도 제 힘으로 도는 것이 아니었다. 공장 어딘가 — 대개 별채의 기관실 — 에서 증기기관 한 대가 돌고, 그 한 대의 회전이 축과 벨트를 타고 건물 구석구석까지 배달되고 있었다. 공장 전체가 하나의 심장으로 사는 몸이었다. 소리도 그 구조를 닮아 있었다. 축이 웅웅거리고 벨트가 철썩이는 소리가 온 건물의 배경음이었고, 아침에 기관이 깨어나면 공장 전체가 한 몸처럼 함께 깨어났다.

증기기관 자체가 이미 한 번의 해방이었다. 1712년 뉴커먼의 기관은 광산 갱도의 물을 퍼 올리는 펌프로 태어났고, 와트가 그것을 회전 동력으로 다듬으면서 동력은 마침내 강가라는 지리에서 풀려났다. 와트가 만든 단위 '마력'은 이 기계가 무엇을 대체했는지를 이름으로 말해 준다. 그러나 기관은 크고 비쌌다. 기계마다 한 대씩 놓을 물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공장은 큰 심장 하나를 두고 그 박동을 온 건물에 나눠 보내는 혈관을 발명했다. 18세기 말부터 공장 천장을 차지한 라인샤프트 — 전동기 이전의 동력 배관이다.

축의 지도

혈관은 그러나 공짜가 아니었다. 라인샤프트 공장에서 기계의 자리를 정하는 것은 일의 순서가 아니라 축의 지도였다. 벨트는 축 바로 아래로만 내려올 수 있었으므로 기계는 축을 따라 줄지어 섰고, 공정상 이웃해야 할 두 작업이 동력 사정 때문에 서로 떨어진 자리에 놓이기도 했다. 재료는 그 사이를 사람의 등과 손수레에 실려 오갔다. 배치의 주인은 일이 아니라 동력이었다.

게다가 축은 기계가 놀 때도 돌았다. 벨트 몇 가닥만 일하는 시간에도 심장은 온몸 몫으로 뛰어야 했고, 힘은 긴 축과 수많은 베어링과 벨트의 미끄러짐을 지나는 동안 조금씩 새어 나갔다. 공장을 늘리는 일도 간단치 않았다. 건물을 붙이려면 축을 잇고 벨트를 다시 걸어, 기계보다 혈관부터 늘려야 했다.

위험도 구조에 새겨져 있었다. 머리 위에서 축이 돌고 곁에서 벨트가 달리는 공간이 그대로 작업장이었다. 돌아가는 축 곁에서 벨트를 걸고 벗기고 기름을 치는 일은, 옷자락이나 머리카락 한 줌이 말려드는 것만으로 사람이 크게 다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심장이 하나라는 것은 곧, 그 심장이 멈추면 전부 멈춘다는 뜻이었다. 기관이 서면 공장 전체가 섰고, 거꾸로 기계 한 대만 쓰려 해도 축 전체를 돌려야 했다. 한 대의 심장은 공장을 살게 했지만, 공장의 모양과 하루를 제 사정대로 옭아매고 있었다.

회전을 전선에 싣다

바뀜의 첫 열쇠는 공장 밖에서 왔다. 물레방아 이래 모든 동력에는 공통의 조건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써야 한다는 것. 강의 힘은 강가에서, 기관의 힘은 보일러 곁에서만 쓸 수 있었다. 1870년대의 발전기가 이 조건을 깼다. 회전을 전류로 바꾸면, 힘은 축이 아니라 전선에 실린다.

선언의 순간은 1891년이었다. 라우펜의 수력 발전기가 만든 전기가 약 175킬로미터 떨어진 프랑크푸르트 전기박람회장까지 송전되어 불을 밝히고 기계를 돌렸다. 폭포의 힘이 먼 도시에서 일을 한 것이다. 동력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힘이 만들어지는 곳과 힘이 쓰이는 곳이 지도 위에서 갈라진 순간이었다. 동력이 장소에서 풀려났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다. 공장 안에서도, 힘이 굳이 천장의 축을 타고 다닐 이유가 있는가.

기계마다 제 심장을

전기가 공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 풍경은 뜻밖에 그대로였다. 많은 공장이 큰 전동기 한 대로 증기기관의 자리만 바꿔 채우고, 여전히 천장의 축과 벨트를 돌렸다. 새 심장을 옛 혈관에 이어 붙인 셈이다. 익숙한 설계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이 절충 속에서도 공장은 전기의 성질을 조금씩 배워 갔다 — 축을 몇 토막으로 나눠 구역마다 전동기를 달면, 밤에는 필요한 구역만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진짜 이식은 그다음이었다. 전동기는 증기기관과 달리 작게 나눌 수 있는 심장이었고, 이윽고 기계마다 제 전동기를 다는 방식이 퍼져 나갔다. 기계 속으로 심장이 들어가자, 천장의 축과 벨트는 있을 이유를 잃었다. 기계는 필요할 때만 제 심장을 켰고, 한 대가 서도 나머지는 돌았다.

경제사가 워런 디바인의 셈에 따르면, 미국 공장 구동력에서 전기의 몫은 1899년 약 5퍼센트에서 1929년 약 80퍼센트로 올라갔다. 한 세대 만에 공장의 심장이 통째로 갈린 것이다. 결과는 동력 절약만이 아니었다. 전선은 벨트와 달리 모퉁이를 돌고, 어디로든 늘어난다. 기계를 축 아래 줄 세울 이유가 사라지자, 공장은 비로소 동력의 사정이 아니라 일의 흐름을 따라 설계되기 시작했다. 재료가 들어와 제품이 되어 나가는 순서대로 기계가 놓였고, 텅 빈 천장 아래에서 공장의 평면도는 처음으로 공정의 논리를 닮아 갔다. 심장 이식이 몸의 골격까지 바꾼 것이다.

같은 전기, 두 개의 현장

돌아보면 이 결말에는 낯익은 데가 있다. 라인샤프트보다 훨씬 전, 중세 이래의 장인들은 발틀을 밟았다. 발이 구동을 맡자 두 손이 일에 돌아왔고, 선반과 물레와 재봉틀은 한 사람이 온전히 부리는 기계가 됐다. 인력 시대의 개인 동력 — 기계 하나에 심장 하나라는 원리는 무릎 아래에서 먼저 태어났던 셈이다. 라인샤프트가 그 심장들을 하나로 모았다면, 전동기는 그것을 다시 기계마다 돌려주었다. 근육 대신 전기로, 발틀의 원리를 공장의 규모로. 차이가 있다면 동력의 출처다. 발틀의 심장은 여전히 사람의 다리였지만, 전동기의 심장은 전선 너머의 발전소였다. 개인 동력의 형태에, 처음으로 근육 아닌 힘이 실린 것이다.

그리고 이 이식은 공장 담장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기계마다 붙일 수 있을 만큼 작아진 전동기는 대야에도, 재봉틀에도, 부엌의 도구들에도 붙었다. 이 회차의 부엌 이야기가 다루는 변화와 이 공장의 변화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 회전을 전선에 실어 어디로든 보내고, 필요한 자리마다 작은 심장을 다는 것. 같은 전기가, 같은 시대에, 공장의 평면도와 부엌의 하루를 동시에 다시 그렸다. 공장의 심장 이식은 그 큰 이야기의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집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REFERENCES이 이야기의 근거 — 참조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