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세울 수 없는 땅
농경의 역사에서 울타리는 공기처럼 당연한 물건이었다. 숲이 있는 곳에서는 나무를 쪼개 세웠고, 밭에서 골라낸 돌이 쌓이는 곳에서는 돌담이 자랐다. 울타리의 재료는 언제나 그 땅이 공짜로 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19세기 미국인들이 미시시피강을 넘어 만난 대평원은 그 당연함이 통하지 않는 땅이었다. 지평선까지 풀뿐인 벌판에는 쪼갤 나무도, 쌓을 돌도 없었다. 목재를 동부에서 실어 오면 울타리 값이 그 안에 담을 땅값을 우습게 넘어섰다.
울타리가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었다. 경계가 없으면 농사는 방목 가축의 발굽 아래 놓이고, 가축은 지평선 너머로 흩어진다. 심고 지키는 일도, 기르고 모으는 일도 선 하나를 전제로 한다. 서부로 들어온 정착 농민에게 울타리 문제는 농장 경영의 사활이 걸린 물음이었고, 개척 시대의 신문과 농업지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만큼 답이 없는 물음이기도 했다. 대평원은 선을 그을 재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 땅에서 경계는 물건이 아니라 노동이 되었다.
경계는 사람이 서는 근무였다
개방 목장, 이른바 오픈 레인지의 시대에 소들은 울타리 없는 벌판을 무리 지어 떠돌았고, 소유는 가죽에 찍힌 낙인으로만 구분되었다. 그 질서를 지탱한 것이 목동 — 카우보이 — 의 몸이었다. 말을 탄 사람이 무리의 가장자리를 돌며 흩어지는 소를 몰아 넣고, 남의 무리와 섞이지 않게 갈라 세우고, 밤에는 교대로 잠을 쪼개 가며 무리 곁을 지켰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돌았고, 무리가 밤중에 놀라 내달리면 잠을 버리고 말에 올라야 했다. 계절마다 흩어진 소를 다시 모아 낙인을 확인하는 대규모 소몰이가 벌어졌는데, 이것 역시 울타리가 없기에 치러야 하는 연례 노동이었다. 훗날 낭만의 옷을 입게 되는 이 직업의 실체는, 걷어 내고 보면 끝없는 감시 근무였다. 울타리가 해 줄 일을 사람의 눈과 말의 다리가 밤낮없이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노동은 규모의 족쇄이기도 했다. 지킬 수 있는 소의 수는 결국 고용할 수 있는 눈의 수로 정해졌고, 눈은 잠을 자야 했다. 대평원의 목축과 농경은 재료가 아니라 사람의 주의력이 바닥나는 지점에서 멈춰 서 있었다.
1874년, 철사에 박힌 가시
해법은 뜻밖의 방향에서 왔다. 일리노이주 디캘브의 농부 조지프 글리든이 철사 두 가닥을 꼬아 그 사이에 짧은 가시를 단단히 물려 고정하는 방법을 고안해 1874년 특허를 받은 것이다. 가시 달린 울타리라는 발상 자체는 그만의 것이 아니어서 비슷한 시기에 여러 고안자들이 특허 경쟁을 벌였지만, 두 가닥의 꼬임이 가시를 제자리에 붙들어 두는 글리든의 방식이 결국 표준이 되었다. 매끈한 철사 울타리는 이미 있었지만 소가 몸으로 밀면 밀리는 물건이었다. 가시는 달랐다. 한 번 찔린 소는 다시 다가가지 않았다. 철사 위의 작은 가시가 짐승에게 경계를 가르쳤고, 그 학습은 목동의 고함보다 오래갔다.
무엇보다 철조망은 쌌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땅에서도 철사 타래는 마차에 실려 왔고, 기둥 몇 개 간격이면 지평선까지 선을 그을 수 있었다. 대평원이 처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값의 울타리, 아니 사실상 이 땅이 가져 본 최초의 울타리였다.
철사가 넘겨받은 밤, 그리고 끊긴 길
그 선이 그어지자 사람이 서 있던 자리를 철사가 대신 지키기 시작했다. 철사는 잠들지 않고, 품삯을 받지 않고, 무리의 가장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밤낮으로 이어지던 목동의 감시 근무는 한 번 치면 그 자리에 서 있는 물질 속으로 새겨져 들어갔다. 남은 사람의 일은 감시가 아니라 점검이 되었다. 무리 곁을 지키던 기수의 자리에는, 철사가 늘어지거나 끊긴 곳을 찾아 울타리 선을 따라 도는 기수가 남았다. 소를 무리째 떠돌게 하던 개방 목장의 시대는 그렇게 조용히 저물었고, 목축은 경계 지어진 목장의 관리로, 벌판은 쟁기가 들어서는 정주 농경지로 바뀌어 갔다. 울타리 뒤에서 밭을 갈던 그 농경이 훗날 트랙터의 무대가 된다.
그러나 노동을 대체한 물건은 그 노동이 조율하던 이해관계까지 함께 물려받는다. 목동의 감시는 소만 지킨 것이 아니라, 물가로 가는 길과 계절 따라 이동하는 관행 위에서 이웃한 무리들 사이를 조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철사는 조정하지 않는다. 그저 막는다. 새 울타리가 물길과 이동로를 끊자 1880년대 평원 곳곳에서는 철사를 치는 쪽과 끊는 쪽이 충돌했고, 이른바 울타리 전쟁이라 불리는 분쟁 끝에야 경계의 규칙이 법으로 다시 쓰였다. 사람의 일을 물건에 넘길 때, 사람 사이의 일까지 저절로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 철사는 일찍 보여 준 셈이다.
감시를 물건에 맡긴다는 것
이 축의 다른 기계들과 나란히 놓으면 철조망의 자리가 선명해진다. 이 축의 이야기들은 대개 굽은 허리와 무거운 짐, 곧 몸의 노동을 기계가 넘겨받는 이야기였다. 쟁기와 트랙터가 대체한 것도 결국 힘이었다. 그런데 철조망이 대체한 것은 힘이 아니라 주의력이다 — 지켜보고, 알아차리고, 막아서는 일. 그리고 그 대체에는 동력이 한 조각도 들지 않았다. 도는 바퀴도 타는 연료도 없이, 꼬인 철사와 가시만으로 철조망은 스물네 시간의 근무를 통째로 흡수했다. 가장 값싼 노동 대체 장치는 기계가 아니라, 감시를 물건에 맡기는 것이었다.
같은 시대 이야기 속 마구가 동물의 힘을 빌려 오는 계약의 도구였다면, 철조망은 그 오래된 계약의 다른 조항 — 어디까지가 네 자리인가 — 을 사람 대신 집행하는 도구였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그 계약은 이후로도 사람의 손을 떠나 점점 더 많은 물건들에 맡겨진다. 그리고 움직임을 막는 이 값싼 원리가 목장 바깥으로 걸어 나갔을 때 어떤 세기가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