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를 나르던 몸들
오랫동안 정보는 몸에 실려 다녔다. 소식이 가려면 사람이 가야 했다. 칙령은 파발마의 안장 위에서 흔들렸고, 전쟁의 소식은 전령의 다리 힘으로 전해졌으며, 대양 건너의 시세는 우편선의 돛과 함께 몇 주씩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소식의 속도는 곧 몸의 속도였다. 말이 지치면 소식도 쉬었고, 바람이 자면 가격도 멈췄다. 규모가 작아져도 사정은 같았다. 상점의 정보는 주인의 몸 안에 있었다. 물건값은 머릿속에, 하루 매상은 암산과 손으로 적는 장부에, 서랍 속 현금의 안위는 주인의 눈에 달려 있었다. 정보를 만드는 일, 나르는 일, 지키는 일, 베끼는 일 — 전부가 누군가의 몸이 감당하는 노동이었다. 그래서 정보에는 언제나 운임이 붙었다. 시간이라는 운임,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는 몸의 품삯. 이 글은 그 몸들이 차례로 짐을 내려놓은 장면들을 따라간다. 전선이 말을 앞지른 날, 톱니가 장부를 넘겨받은 날, 그리고 줄무늬 몇 개가 상품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친 날.
전선이 말을 앞지르다
첫 장면은 184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다. 전신은 소식을 부호로 바꿔 전선 위에 실었고, 그 순간 정보는 역사상 처음으로 그것을 나르던 운반 수단보다 빨라졌다. 대륙을 건너는 데 며칠, 몇 주가 걸리던 소식이 몇 분 만에 도착했다. 이것이 얼마나 급진적인 단절이었는지는 그 전의 세계를 떠올려야 보인다. 전신 이전에는 아무리 급한 소식도 가장 빠른 몸보다 빠를 수 없었다. 전신 이후, 소식은 몸을 두고 먼저 떠났다. 톰 스탠디지가 이 첫 통신망을 '빅토리아 시대의 인터넷'이라 부른 것은 수사가 아니다. 시세와 뉴스와 안부가 거의 실시간으로 흐르는 망 — 우리가 아는 정보 사회의 원형이 이미 전선 위에 있었다. 특히 시세가 실시간이 되자 상업의 리듬 자체가 바뀌었다. 먼 항구의 가격을 몇 주 뒤에 아는 상인과 몇 분 뒤에 아는 상인은 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거리가 만들어 주던 시간차가 사라지자, 사고파는 판단의 단위도 계절에서 분으로 좁혀졌다. 물론 전신이 모든 몸을 물린 것은 아니다. 전신국마다 부호를 두드리고 받아 적는 전신 기사가 새로 앉았다. 그러나 소식 하나가 사람 하나를 통째로 데리고 움직이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움직이는 것은 부호였고, 사람은 전선의 양 끝에만 있으면 됐다. 그리고 그만큼의 전달 노동 — 소식을 몸으로 실어 나르던 기수와 전령의 일 — 이 조용히 퇴역을 시작했다.
신뢰를 톱니에 맡기다
전신이 먼 곳의 정보를 해방시켰다면, 두 번째 장면은 계산대 앞 반경 한 걸음에서 일어났다. 1879년 오하이오 데이턴의 술집 주인 제임스 리티는 종업원의 손버릇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서랍 속 현금은 기록되지 않았고, 기록되지 않는 돈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리티가 만든 금전등록기 — 스스로 붙인 이름은 '부정 방지 금고'였다 — 는 거래마다 금액을 자동으로 기록하고 합산했다. 하루 매상 결산이 기계에서 바로 나왔다. 이 기계가 덜어낸 것은 가게 주인의 암산과 손으로 적는 매상 장부, 그리고 서랍을 지켜보는 감시의 노동이었다. 그러나 더 깊은 층위에서 이 기계가 옮긴 것은 신뢰의 소재지다. 장부가 주인의 머릿속에 있는 한, 기록의 정확성은 기억력에, 기록의 정직성은 사람 됨됨이에 달려 있었다. 금전등록기는 그 둘을 한꺼번에 톱니에 맡겼다. 기억 대신 기계가 장부를 들고, 정직성 대신 기계가 서랍을 지킨다. 기계는 잊지 않고, 유혹받지도 않는다. 저녁마다 서랍의 현금과 머릿속 셈을 맞춰 보던 결산의 시간도 그만큼 짧아졌다. 술집 하나의 골칫거리에서 출발한 이 장치는 NCR을 거쳐 근대 사무기기 산업의 뿌리가 됐다.
상품이 스스로 말하다
1974년, 오하이오의 한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리글리 껌 한 통이 역사상 처음으로 스캔됐다. 그 전까지 계산대의 정보는 여전히 사람 손을 거쳤다. 계산원은 상품마다 가격을 찾아 등록기에 손으로 입력했고, 창고에서는 재고를 일일이 세었다. 금전등록기가 기록을 맡은 지 한 세기가 지나도록, 기계에 정보를 넣어 주는 일만은 몸의 몫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바코드는 그 마지막 입력을 스캔 한 번으로 줄였다. 상품이 계산대를 지나는 순간이 그대로 판매 기록이자 재고 데이터가 됐다. 이 정보는 상품이 태어날 때 포장 위에 인쇄되어, 옮겨 적을 필요도 다시 붙일 필요도 없이 유통의 끝까지 상품과 함께 갔다. 전신이 정보를 몸에서 떼어내 전선에 실었다면, 바코드는 정보를 아예 사물의 표면에 인쇄했다. 줄무늬 몇 개가 상품에게 저 자신에 대해 말하는 법을 가르치자, 상품에 대해 대신 말해 주던 노동 — 계산대의 타이핑과 창고의 수작업 조사 — 이 함께 저물기 시작했다.
복제라는 마지막 짐, 그리고 퇴역사
곁가지 하나를 붙여야 공정하다. 정보의 노동에는 나르는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같은 문서를 하나 더 만드는 일 — 먹지를 겹쳐 대고, 부수가 모자라면 문서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타자하던 복제의 노동이 있었다. 체스터 칼슨의 전자사진술은 20년의 문전박대 끝에 1959년 제록스 914 복사기로 태어났고, 문서 한 부를 더 만드는 비용은 버튼 한 번 값으로, 사실상 공짜로 내려앉았다. 나르는 노동이 전선으로 갔듯, 베끼는 노동은 유리판 위의 빛으로 갔다. 나르든 베끼든 원리는 같았다. 몸이 하던 일에서 규칙을 찾아내면, 그 일은 몸을 떠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정보의 역사는 발명품의 연대기이기 이전에, 정보를 나르던 몸들의 퇴역사다. 파발마의 기수, 서랍을 노려보던 주인의 눈, 가격을 두드리던 계산원의 손, 먹지를 갈아 끼우던 타이피스트의 오후가 차례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이 퇴역은 혼자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시대에 내연기관은 몸 그 자체를 실어 나르는 속도를 바꾸고 있었다 — 이 에피소드의 다른 이야기가 따라가는 그 엔진들 말이다. 정보의 해방과 몸의 가속, 두 흐름은 결국 같은 날에서 갈라져 나왔다. 세상이 빨라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