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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3 · MANUFACTURING

일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시카고의 해체 라인에서 GM의 첫 로봇까지 — 사람이 일감으로 가는 대신 일감이 사람 앞으로 흐르게 된 과정의 이야기.

소는 천장을 타고 흘렀다

19세기 후반, 시카고의 도축장을 찾은 사람들은 기묘한 광경을 보았다. 머리 위 궤도에 매달린 소가 노동자들 앞을 차례로 지나가고, 노동자들은 제자리에 선 채 각자 정해진 부위에만 칼을 댔다. 한 사람이 소 한 마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는 것이 아니라, 소 한 마리가 수십 명의 손을 차례로 통과했다. 그것은 해체 라인이었다 —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일감이었다. 칼을 든 사람들은 더 이상 걷지 않았다. 걷는 일, 드는 일, 나르는 일, 다음 일감을 기다리는 일 — 작업과 작업 사이를 메우던 그 자잘한 움직임들이 통째로 궤도 위로 올라갔다.

이 머리 위 컨베이어가 한 일은 단순해 보인다. 재료와 반제품을 사람이 들어 나르던 공장 안의 운반 노동을, 궤도가 대신 맡은 것이다. 그러나 운반이 공정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다른 일이 벌어진다. 궤도의 속도가 곧 작업의 속도가 된다. 누구도 자기 리듬대로 일할 수 없고, 누구도 라인보다 늦을 수 없다. 물론 도축장 사람들이 그것을 대단한 발명이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저 소를 빨리 처리하는 방법이었다. 발명이 되는 것은 그 흐름이 전혀 다른 물건 앞으로 옮겨 심어졌을 때다. 훗날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이 이 광경에서 얻어 간 것은 고기가 아니라 바로 이 문법이었다. 소를 해체하는 흐름을 거꾸로 돌리면, 자동차를 조립하는 흐름이 된다.

흐름의 전제 — 맞추던 손에서 재서 버리는 자로

그런데 흐름에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조립이 흐르려면, 부품이 반드시 맞아야 한다.

오랫동안 조립은 맞춤의 노동이었다. 부품 하나를 짝이 되는 부품에 대보고, 안 맞으면 깎고, 다시 대보고, 줄질하고 — 그렇게 세상에 하나뿐인 짝을 만들어 끼웠다. 이 방식으로도 훌륭한 기계는 만들 수 있다. 다만 흐를 수가 없을 뿐이다. 맞춤의 세계에서 부품은 서로 바꿔 끼울 수 없고, 조립의 속도는 언제나 가장 느린 줄질의 속도다. 줄질하는 동안 라인은 그 자리에 멈춰 서야 하니까.

19세기 뉴잉글랜드의 시계 공장과 재봉틀 공장이 다른 길을 냈다. 통과·불통과 게이지 — 맞으면 통과시키고, 안 맞으면 버린다. 그 사이는 없다. 숙련공이 손끝으로 하던 '맞춤'이 측정에 의한 '판정'으로 바뀌자, 어느 작업대에서 나온 부품이든 다른 작업대의 부품과 끼워 맞는 호환 부품이 가능해졌다. 시계와 재봉틀과 농기계의 무수한 작은 부품이 증명한 사실은 이것이다. 줄질을 없애는 길은 더 능숙한 손이 아니라 더 엄격한 자였다.

게이지 자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깎지도 않고, 조이지도 않는다. 다만 판정할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판정이 뒤에 올 모든 흐름의 바닥을 깔았다. 조립라인은 이 약속 — 부품은 반드시 맞는다 — 위에서만 흐를 수 있었다.

1913년 하이랜드파크, 93분

1913년, 포드 하이랜드파크 공장에서 두 갈래가 합쳐졌다. 시카고에서 온 흐름의 문법과, 뉴잉글랜드에서 온 호환 부품의 약속.

그전까지 자동차는 숙련공 팀이 한 자리에서 통째로 조립하는 물건이었다. 부품이 사람에게 운반되어 왔고, 사람은 완성될 때까지 제품 곁을 지켰다. 조립라인은 그 관계를 뒤집었다. 노동자가 일감으로 가는 대신, 일감이 노동자 앞으로 흘러왔다. 각자는 제자리에서 한 가지 동작만 반복했고, 미완성의 섀시는 곧 다음 사람 앞으로 넘어갔다. 작업은 잘게 쪼개졌고, 쪼개진 만큼 배우기 쉬워졌고, 배우기 쉬워진 만큼 어느 자리든 다른 사람으로 채우기 쉬워졌다. 흐름이 바꾼 것은 속도만이 아니라 노동의 성격 그 자체였다.

숫자가 남아 있다. 모델 T 섀시 한 대의 조립 시간은 12시간 30분에서 93분으로 줄었다. 1913년에서 이듬해 사이의 일이고, 대략 8배다. 반나절 넘게 걸리던 일이 한 시간 반 남짓으로 줄어든 셈인데, 그동안 노동자 개개인의 손이 여덟 배 빨라진 것은 아니었다. 빨라진 것은 손이 아니라 손과 손 사이였다. 어떤 기계 하나가 만든 숫자가 아니었다. 컨베이어도, 게이지도, 부품도 이미 다 있었다. 새로 태어난 것은 그것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흐름'이라는 배치였다. 그리고 그 배치는 20세기 제조업의 표준 문법이 되었다. 라인의 속도가 작업의 속도를 정하고, 노동은 흐름 위의 한 지점이 되었다.

가장 뜨거운 자리부터

흐름은 사람을 배치했지만, 자리를 가리지는 않았다. 라인 위에는 사람이 서 있기 괴로운 자리들이 있었다. 다이캐스팅 기계 앞이 그런 자리였다 — 달궈진 주물을 기계에서 꺼내는, 뜨겁고 위험한 반복.

1961년, 데볼과 엥겔버거가 만든 유니메이트가 GM 뉴저지 공장의 다이캐스팅 라인에 섰다. 공장에 선 첫 산업로봇이었다. 팔 하나가 들어온 자리는 가장 화려한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가장 기피하던 자리였고, 로봇은 그 고온·유해 공정을 24시간 반복했다. 로봇이 공장에 들어온 문은 가장 위험한 문이었던 셈이다.

이 장면은 흐름의 논리가 낳은 자연스러운 다음 수였다. 일감이 정해진 속도로 정해진 자리에 도착한다면,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흐름이 노동을 자리로 쪼개 놓았기에, 자리 하나를 통째로 기계 팔에 넘기는 일도 가능해진 것이다.

'일은 흐른다'는 발명

돌아보면 순서가 보인다. 게이지가 부품의 흐름을 가능하게 했고, 컨베이어가 일감의 흐름을 만들었고, 조립라인이 그 흐름으로 공장 전체를 재배치했고, 로봇은 그 흐름 위의 한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도구는 강철로 만든 것이 아니다. 컨베이어 벨트는 닳고 게이지는 무뎌지지만, '일은 흐를 수 있다'는 생각은 닳지 않는다. 그 개념 자체가 도구였다 — 손에 쥘 수는 없지만, 공장 하나를 통째로 다시 배치하게 만드는 도구. 한번 그렇게 보이기 시작한 공장은, 다시는 이전처럼 보이지 않았다.

REFERENCES이 이야기의 근거 — 참조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