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려갈 수 없는 힘
증기기관은 이미 한 번 세상을 바꿨다. 1712년 뉴커먼의 기관이 광산의 물을 퍼 올렸고, 와트가 그것을 회전 동력으로 다듬자 힘은 폭포도 바람도 없는 곳에서 태어날 수 있게 됐다. 동력이 강가라는 지리에서 풀려난 것이다. 그러나 이 해방에는 무게가 달려 있었다. 불을 때는 보일러, 끓일 물, 태울 석탄 — 증기의 힘은 크고 무거운 장치 전체를 전제로 했다. 공장처럼 힘을 한자리에 모아 쓰는 곳, 철로처럼 무게를 받아 줄 길이 깔린 곳에서는 이 조건이 문제되지 않았다. 문제는 나머지 세상이었다.
밭고랑에는 보일러를 끌고 들어갈 수 없었다. 시골길의 짐수레 앞에도, 작은 작업장의 기계 곁에도. 그래서 증기의 세기가 한창일 때에도 밭을 가는 것은 여전히 말과 소였고, 짐수레를 끄는 것은 노새였다. 여기에는 얄궂은 데가 있다. 와트가 만든 단위 '마력'은 이 기계가 대체하려던 상대가 말이었음을 이름으로 말해 준다. 그런데 정작 말의 가장 큰 일터인 밭고랑과 시골길에는, 그 말을 대체한다는 기계가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공장과 광산과 철로에서 증기가 말을 밀어내는 동안에도, 들판의 말은 제 자리를 지켰다. 힘은 세졌지만, 데려갈 수 없는 힘이었다. 동력의 다음 숙제는 더 센 힘이 아니라 더 가벼운 힘이었다.
폭발을 실린더 안에 가두다
답은 불을 옮겨 놓는 데서 나왔다. 증기기관은 불을 보일러 밑에서 피운다. 불이 물을 끓이고, 증기가 피스톤을 민다. 불과 일 사이에 물이라는 무겁고 큰 중계가 끼어 있는 셈이다. 내연기관은 이 중계를 걷어냈다. 연료를 실린더 안에서 직접 태우고 — 정확히는 터뜨리고 — 그 팽창이 곧바로 피스톤을 민다. 1876년 독일, 오토의 기관에서 이 방식은 실용의 문턱을 넘었다. 폭발은 본래 부수는 힘이지만, 실린더라는 우리에 가두고 박자에 맞춰 되풀이하게 하자 미는 힘이 됐다. 길들여진 폭발이다.
보일러도, 끓일 물도 없이 불이 곧바로 일이 되자 동력은 급격히 가벼워졌다. 무게당 힘에서 내연기관은 증기를 크게 앞질렀고, 그 차이가 힘이 닿는 지도를 바꿨다. 증기가 닿던 곳은 힘이 모이는 큰 자리들 — 공장, 광산, 철로 — 이었다. 가벼워진 힘은 그 지도의 여백으로 스며들었다. 트랙터가 밭고랑에 들어갔고, 트럭이 시골길을 달렸고, 소형 기계들이 처음으로 제 엔진을 가졌다. 큰 힘 하나를 나눠 쓰는 대신, 작은 힘을 필요한 자리마다 두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20세기 전반에 걸쳐, 농장에서 말이 물러났다. 멍에 이래 수천 년 동안 견인을 도맡아 온 가축의 근육이,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불에게 밭을 넘겨준 것이다.
왕복을 건너뛴 회전
같은 시대에 증기는 반대 방향의 답을 찾고 있었다. 피스톤 기관의 힘은 왕복이다. 밀고, 돌아오고, 다시 민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더 원하는 것은 회전이었고 — 특히 발전기는 빠르고 고른 회전을 원했다 — 왕복을 회전으로 바꾸려면 크랭크와 플라이휠의 중계를 거쳐야 했다. 번역은 되지만, 원문은 아니었다. 1884년 파슨스의 증기 터빈은 왕복이라는 단계를 아예 건너뛰었다. 증기를 날개에 직접 부딪혀, 처음부터 회전으로 힘을 꺼낸 것이다.
파슨스의 첫 터보발전기는 7.5킬로와트였다. 오늘날 발전소의 터빈 한 대는 그 수십만 배를 낸다. 시작은 작았지만 방향이 옳았던 셈이다. 조용하고 빠르고 고른 이 회전은 발전소의 심장이 됐고, 세계 전기의 대부분은 지금도 증기 터빈의 회전에서 나온다. 전등을 켜고 전동기를 돌리는 힘의 뿌리를 따라가면, 대개 어딘가의 보일러에서 만들어진 증기가 터빈의 날개를 때리고 있다. 증기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라, 발전소 안으로 들어가 전기의 시대를 떠받치는 바닥이 된 것이다. 공장의 심장 이식 이야기에서 기계마다 달린 전동기를 돌리던 그 전기도, 전선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개 이 회전에서 출발한다. 내연기관이 힘을 낱낱의 기계에게 나눠 들려 보냈다면, 터빈은 힘을 한곳에 모아 전선에 실었다. 하나의 증기에서 갈라진 두 갈래가, 하나는 흩어지는 길로, 하나는 모이는 길로 간 셈이다.
오래된 문법, 새 기관 속으로
새 기관의 속을 들여다보면 낯익은 부품이 돌고 있다. 플라이휠 — 힘의 저금통이다. 고대 이래 도공의 물레는 무거운 테두리에 운동을 저축했다가, 발차기가 끊긴 사이에 꺼내 썼다. 증기기관의 피스톤이 내는 맥동도 이 바퀴를 거쳐 고른 회전이 됐다. 폭발로 미는 기관에게 이 저금통은 더욱 절실했다. 폭발은 본성상 맥동이기 때문이다. 터지고, 쉬고, 다시 터지는 힘의 파도를 무거운 바퀴가 받아, 고른 회전으로 바꿔 내보냈다.
캠은 그 반대쪽 문법이었다. 중세 강가의 방아에서 축에 박힌 돌기 하나가 수차의 고른 회전을 해머의 낙하로, 풀무의 호흡으로 바꿨다 — 회전을 두드림으로 번역하는 문법. 축융과 단조와 제지가 그렇게 물의 일이 됐다. 그리고 내연기관은 이 문장을 거꾸로 읽는 기계다. 캠이 회전을 두드림으로 바꿨다면, 내연기관은 두드림 — 실린더 속의 폭발 — 을 회전으로 바꾼다. 맥동을 고르는 플라이휠과 회전과 두드림을 오가는 캠의 문법. 중세의 물레방아 곁에서 다듬어진 이 오래된 언어가 있었기에, 폭발이라는 사나운 동사도 일이라는 문장이 될 수 있었다.
세상이 빨라진 날
이 회차의 전신 이야기와 이 이야기는 한 뿌리에서 자란다. 같은 시대에 소식은 전선을 타고 사람보다 먼저 도착하기 시작했고, 힘은 보일러를 벗고 밭고랑과 시골길까지 걸어 들어갔으며, 터빈의 회전은 전기가 되어 도시로 흘렀다. 말이 빨라지고, 힘이 가벼워지고, 회전이 전류가 된 것 — 세상이 빨라진 날의 세 얼굴이다. 폭발을 길들인 기관과 왕복을 건너뛴 터빈은 그중 힘의 몫을 맡았다. 무겁고 느리던 동력이 가볍고 빨라지자, 세상의 속도 자체가 다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