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 · MMX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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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 HOUSEHOLD

차가움의 발명 — 얼음 상인에서 냉장고까지

겨울 호수를 톱으로 켜서 여름에 팔던 산업이 있었다 — 매일의 장보기와 염장 항아리, 얼음 배달부의 시대가 냉장고 한 대에 조용히 끝나고, 차가움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기까지의 이야기.

부패와의 노동

냉장고 이전의 부엌을 지배한 것은 요리가 아니라 부패였다. 음식은 사 오는 순간부터 상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오늘 먹을 것을 오늘 산다'는 것은 취향이 아니라 규칙이었다. 장보기는 매일의 일과였다 — 우유는 아침에, 고기는 그날 먹을 만큼만, 생선은 눈이 맑은 놈으로. 하루를 넘겨야 하는 음식에는 별도의 노동이 청구됐다. 소금에 절이고, 연기에 그을리고, 식초와 장에 담그는 보존 노동이다. 김장독과 젓갈 항아리, 햄과 자우어크라우트 — 세계 어느 부엌이든 그 지역의 절임 문화란, 뒤집어 보면 냉장고 없이 겨울을 나던 방법의 목록이다. 그리고 이 모든 방법은 손이 갔다. 부패는 매일 이기든가, 미리 몇 주 치를 이겨 두든가 해야 하는 상대였다. 달력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김장철이니 장 담그는 날이니 하는 계절 행사들은, 뒤집어 보면 부패와의 싸움을 집안 전체가 며칠씩 치르던 연례 전투의 이름들이다.

부유한 집에는 한 가지 수단이 더 있었다. 얼음이다. 아이스박스라 불리는 단열 찬장에 얼음 덩이를 넣어 두면 며칠은 벌 수 있었다. 대신 얼음 배달부가 정기적으로 문을 두드렸고, 녹은 물이 고이는 물받이는 매일 비워야 했다. 차가움조차 배달받고 관리해야 하는 살림 항목이었던 것이다.

겨울을 수확하는 산업

그 얼음은 어디서 왔을까. 공장이 아니라 호수에서 왔다. 개빈 웨이트먼이 『The Frozen Water Trade』에서 복원한 19세기의 풍경은 지금 보면 비현실적이다. 한겨울 뉴잉글랜드의 얼어붙은 호수 위에 인부들이 올라가, 말이 끄는 칼로 빙판에 격자 홈을 내고, 톱으로 켜서 거대한 얼음 블록을 잘라냈다. 블록은 톱밥을 채운 창고에 쌓여 여름까지 버텼고, 배에 실려 더운 도시로 팔려 나갔다. 보스턴의 상인 프레더릭 튜더는 이 '겨울의 수확'을 카리브해와 인도까지 실어 나르는 무역으로 키웠다. 얼음은 채취하고, 저장하고, 운반하고, 배달하는 어엿한 산업이었다 — 절정기에는 겨울 호수에서 수백만 톤이 잘려 나갔다. 차가움이 광물처럼 캐내는 자원이던 시대다.

주목할 것은 이 산업의 크기가 곧 노동의 크기였다는 점이다. 호수 위의 톱질부터 부엌 문 앞의 배달까지, 음식 하나를 상하지 않게 지키는 일에 이만큼의 사람 손이 늘어서 있었다.

온도 설정이 된 보존

냉장고는 1920년대 미국 가정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압축기가 만드는 차가움은 계절도 배달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조용한 일이 벌어졌다. 겨울 호수에서 수백만 톤을 잘라내던 천연 얼음 산업이, 한 세대 만에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망한 회사의 목록이 아니라 소멸한 직업의 목록이 남았다 — 빙판의 톱질꾼, 얼음 창고지기, 골목의 얼음 배달부. 부엌 쪽의 변화는 더 깊었다. 매일의 장보기가 주 단위로 느슨해졌고, 염장과 절임은 생존 기술에서 별미의 조리법으로 물러났다. 루스 슈워츠 코완이 추적한 가전의 역사에서 냉장고가 맡은 몫은 분명하다. 보존이라는 노동 항목 자체가, 문 닫힌 상자 안의 온도 설정 하나로 대체된 것이다. 천 년 넘게 이어진 '오늘 먹을 것을 오늘 산다'는 리듬은 그렇게 끝났다. 얼음 산업은 저항다운 저항도 해 보지 못하고 물러났다. 배달할 필요가 없는 차가움과 경쟁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차가움이 바다를 건너다

같은 원리는 부엌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바다 위에 있었다. 1882년, 냉동 설비를 갖춘 범선 더니든호가 뉴질랜드의 냉동 양고기를 싣고 석 달의 항해 끝에 런던에 닿았다. 그전까지 신선한 식량은 산지 곁에서만 먹히는 것이었고, 고기를 바다 건너로 보내려면 살아 있는 가축을 배 위에서 먹이고 돌보며 데려가야 했다. 냉동선은 그 손실과 그 노동을 한꺼번에 회수했다. 목초지의 남는 고기와 도시의 모자란 식탁이 냉기로 이어지자, 식량은 거리의 문제에서 온도의 문제가 됐다. 가정의 냉장고와 바다의 냉동선은 같은 발명의 안팎이다 — 하나는 부엌의 보존 노동을, 하나는 지구 규모의 보존 노동을 지웠다.

나머지 구역을 나눈 형제들

냉장고가 부엌의 시간표를 다시 쓰는 동안, 다른 기계들이 가사의 나머지 구역을 나눠 맡고 있었다. 식기세척기의 출발점은 1886년, 하인들이 아끼는 그릇을 자꾸 깨뜨리는 데 지친 조지핀 코크런의 선언이었다 — "아무도 안 만든다면 내가 직접 만들겠다." 그가 헛간에서 설계해 특허를 받은 기계는 그릇을 선반에 고정하고 수압으로 씻어내는, 오늘날 식기세척기의 구조 그대로였다. 진공청소기는 1901년 이후 카펫을 마당에 걸고 두들기던 봄맞이 대청소를 달력에서 지웠다. 설거지와 먼지와 부패 — 매일 되돌아오던 가사의 세 구역이 이렇게 각자의 기계에게 넘어갔다. 세 기계의 등장이 몇십 년 안쪽에 몰려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기와 수도가 집 안까지 들어온 뒤에야, 가사의 각 구역은 비로소 기계에게 넘길 수 있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에 물레와 방적기가 옷 만들기를 가정에서 산업으로 옮겨 놓았듯, 차가움은 밥상 지키기를 노동에서 설비로 옮겨 놓았다. 옷과 밥상은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산업화됐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핵심은 마지막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톱으로 켜든 압축기로 만들든, 차가움은 한 번도 그냥 물건이었던 적이 없다 — 그것은 언제나 노동의 대체재였다.

REFERENCES이 이야기의 근거 — 참조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