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이전의 요리
오늘의 요리는 냄비를 올리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나 인류사 대부분의 기간, 요리는 그보다 한참 앞에서 시작됐다. 부싯돌과 쇳조각을 두들겨 불티를 받아내는 일은 수 분의 씨름이었고, 그래서 집집마다 불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었다. 잠들기 전 아궁이의 잉걸을 재로 덮어 두고, 밤사이 꺼지지 않았는지 마음을 졸이고, 새벽에 다시 살려내는 일 — '불씨 지키기'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 가사 항목이었다. 불이 꺼진 아침이란 부싯돌과의 씨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아침이었으니, 불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자원이 아니라 하루도 끊기면 안 되는, 계속 돌봐야 하는 살아 있는 재고에 가까웠다.
불씨만이 아니었다. 그 불에 태울 장작을 패고 나르는 일, 재를 퍼내고 그을음을 닦는 일이 매일 요리의 앞뒤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불에 올릴 곡물은 갈아야 했다. 맷돌 이전의 제분은 절구질과 안장형 갈돌 — 몸을 앞뒤로 밀며 곡물을 으깨는, 대개 여성의 몫이던 매일 수 시간의 노동이었다. 기원전 수백 년 무렵 등장한 회전식 맷돌은 이 왕복 동작을 연속 회전으로 바꿨다. 위짝을 돌린다는 단순한 동작 하나가 하루치 제분을 견딜 만한 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물레방아와 풍차보다 먼저, 인류가 매일의 가사에서 회전 기계의 이득을 처음 체감한 곳은 부엌이었다.
정리하면, 밥상 하나의 뒤에는 세 겹의 노동이 있었다. 갈기, 나르기, 지키기. 어느 것도 요리책에는 적히지 않지만, 어느 것 하나 빠지면 그날의 끼니가 없었다. 요리 이전의 요리 — 이 보이지 않는 공정들이 어떻게 하나씩 지워졌는가가 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한 번의 긁기
1826년, 잉글랜드의 약제사 존 워커가 만든 마찰 성냥은 불 얻기를 수 분의 씨름에서 한 번의 긁기로 줄였다. 우연에 가까운 발명이었지만, 변화의 크기는 시간 단축만으로 잴 수 없다. 언제든 불을 켤 수 있게 되자, 불을 지킬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밤새 잉걸을 살피던 긴장, 꺼진 아궁이 앞의 낭패 — '불씨 지키기'라는 가사 항목 자체가 목록에서 소멸했다. 돌봐야 하는 재고였던 불이, 주머니 속에서 꺼내 쓰는 소모품이 된 것이다. 사라진 것은 노동 시간이라기보다 노동의 상주였다. 밤에도 부엌 한구석을 차지하던 걱정 하나가 성냥갑 하나의 크기로 접혔다. 가장 작은 도구가 가장 오래된 걱정 하나를 통째로 지운 셈이다. 불은 이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켜는 것이었다.
도끼와 검댕이 떠난 부엌
성냥이 불의 시작을 바꿨다면, 가스레인지는 불의 관리를 바꿨다.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보급되기 시작한 가스 조리대 이전의 부엌 일과를 보자. 장작이나 석탄을 나르고, 불쏘시개로 아궁이를 살리고, 통풍을 여닫아 화력을 붙들고, 재를 퍼내고, 그을음을 닦는다 — 역사가 루스 슈워츠 코완이 기록했듯, 요리가 시작되기도 전에 요리를 준비하는 노동이 매일 이만큼이었다. 가스관 한 줄이 부엌에 들어오자 이 일과가 통째로 집을 떠났다. 밸브를 여는 순간 원하는 화력이 나오고, 잠그는 순간 사라진다. 아궁이의 불은 한번 살리면 함부로 방치할 수 없어 요리하는 사람의 몸을 화덕 곁에 붙들어 두었지만, 가스 불은 켜고 끄는 것이어서 사람을 놓아주었다. 요리하는 사람의 숙련은 '불을 살려내는 기술'에서 '화력을 조절하는 감각'으로 옮겨 갔고, 부엌에서 도끼와 검댕이 함께 떠났다. 요리라는 일에서 연료라는 무게가 빠져나간 첫 순간이었다.
갇힌 증기
한편, 화력을 아무리 잘 다뤄도 줄지 않는 것이 있었다. 시간이다. 질긴 고기와 콩류는 몇 시간씩 고아야 물러졌고, 그 몇 시간 내내 누군가 불 곁을 지켜야 했으며, 그만큼의 연료가 탔다. 이 문제의 답은 뜻밖에 일찍 나와 있었다. 1679년 드니 파팽은 밀폐 용기 속에서 증기의 압력을 높이면 끓는점이 올라가 뼈까지 무르게 삶을 수 있음을 '증기 찜기'로 시연했다. 증기가 기관을 돌리기 한참 전에, 증기는 부엌에서 뼈를 무르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압력솥의 원리는 지금도 그대로다 — 갇힌 증기가 조리 시간과 연료를 수 분의 일로 압축한다. 몇 시간의 고음이 짧아진다는 것은, 그 몇 시간 동안 불 곁에 매여 있던 사람의 시간과 그동안 타들어 가던 연료가 함께 줄어든다는 뜻이다. 파팽의 찜기는 압력이라는 물리학을 조리대 위에 올린 최초의 도구였고, 부엌은 증기기관보다 먼저 증기의 수혜자였다.
스위치의 아침
동아시아의 아침은 오랫동안 밥짓기에 묶여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아궁이 불을 살리고, 끓어오르는 순간부터 뜸이 드는 시간까지 내내 화력을 지켜보는 일 — 식구 중 누군가는 반드시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야 했고, 이 노동이 매일 아침의 시간표를 정했다. 1955년 도시바가 내놓은 자동 전기밥솥은 불 조절이라는 숙련을 이중 솥과 자동 스위치에 옮겨 담았다. 스위치를 누르면 밥이 된다. 끓는 순간을 지켜볼 필요도, 뜸의 때를 가늠할 필요도 없으니, 새벽마다 아궁이 앞을 지키던 그 시간이 통째로 풀려난 것이다. 수년 만에 일본 가정 절반으로 퍼진 이 솥은 새벽 밥짓기를 끝냈고, 아침의 시간표를 다시 썼다. 세탁기가 서구 가사 해방의 상징이라면, 동아시아의 상징은 이 솥이다.
마지막 잔여 노동도 곧 정리됐다. 데우기다. 1945년 퍼시 스펜서는 마그네트론 곁에서 주머니 속 초콜릿이 녹은 것을 놓치지 않았고, 이 관찰에서 나온 전자레인지는 음식 속 물 분자를 직접 진동시켜 수십 분의 데우기를 수 분으로 줄였다. 오븐을 예열하고 냄비를 지키던, 조리의 마지막 남은 노동이 사라지며 조리 시간의 최소 단위가 다시 정의된 것이다.
불씨에서 스위치까지 — 워커의 성냥에서 도시바의 밥솥, 스펜서의 마그네트론까지, 두 세기가 채 안 되는 시간에 '요리 이전의 요리'는 목록에서 차례로 지워졌다. 지키던 불은 켜는 불이 되고, 나르던 연료는 배관과 전선이 되고, 지켜보던 화력은 스위치가 대신 맡았다. 남은 것은 요리 그 자체다. 그리고 이 변화의 마지막 구간을 민 힘은 공장의 기계를 돌린 힘과 같은 것이었다 — 전동기가 공장을 바꾼 이야기와 밥솥이 부엌을 바꾼 이야기는, 전기가 노동을 다시 썼다는 같은 사건의 두 얼굴이다.